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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참 독특합니다. 최재식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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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참 독특합니다.


그러기에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응원해줄 옆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그 독특함을 아주 보통의 의미로서만 나열해봅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또 순간순간에도 기도합니다. 또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또 미약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싶습니다. 가장 괴롭고 외롭고 시린 날엔 예배를 사모합니다. 
온 마음을 쏟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아주 많이 회복됩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기쁨들이 창조됩니다.

심지어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 헌금을 합니다. 정기적으로 매주 합니다. 
물론 형편에 따라서 적게 할 때도 있지만, 마음 한켠에 늘 이런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아.주.많.이.헌.금.할.거.다.’

심지어 이런 마음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 청년들에게도 있습니다.
깊게 생각해봅시다. 이런 단순한 것들이 보통의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가장 보통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겐 어떨까요? 완전한 ‘비상식’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독특한 것입니다. 
그런데 슬픈 건, 우리는 언제나 이 세상의 상식 앞에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 세상의 관계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여기에 삶의 충실한 의미를 둡니다. 물론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행동을 통해서, 전도가 가능해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가꾸어야 할 관계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독특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관계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며, 지지해줄 사람은 나의 옆에 
있는 그리스도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슬픈 건, 그 아름다운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대부분 신앙을 개인화로 여깁니다. 관계를 맺어야 하는 중요성은 알지만,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어색해합니다. 더 나아가 스스로 삶을 여는 것을 경계합니다.

대부분, ‘나’는 가만히 있을 테니까, ‘너’가 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주길 기다립니다. 
사실 그것만큼 이기적인 관계의 태도가 없습니다. 그것만큼 무지한 관계의 태도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만큼, 하나님을 모르는 행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도, 죽음을 
사용해서 ‘서로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단순합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귀찮고
피곤하고
수고롭고
돈이 아깝고
체력이 아깝고
시간이 아깝고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예배가 끝나면, 빨리 집에 가고 싶습니다. ‘너’와 함께하는 예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대여, 이런 생각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를 하나도 아름답지 않게 만드는 생각들입니다. 
위대한 교회의 힘을, 유치한 교회의 힘으로 만드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교회를 망치는 일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그대가 교회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그대가 교회를 망치고 있는 것이죠.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도, 아무 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말입니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유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의미 중 하나는 성도의 교제 Sanctorum Communio입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이유도, 성찬식이 거룩한 이유도, 모두 하나님과의 교제와 함께 ‘성도의 교제’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 잔인한 박해의 시간을 이겨낸 모든 동력도, ‘성도의 교제’가 서로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단순히 대화가 오고가고가 아닙니다. 
‘나’의 가치만큼 ‘너’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너의 가치, 너의 의미, 너의 힘, 너의 가능성, 너의 소식, 너의 이름, 너의 기쁨에 ‘나’의 존재가 물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 안에 있는 ‘너’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나’의 가치가 동일하게 탄생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스스로 나의 낮아짐과 섬김으로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발견될 때, 돈으로도, 시간으로도, 에너지로도, 살 수 없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나라’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가득한 하나님나라입니다. 

-관계, 김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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