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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봤지?’ 최재식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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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봤지?’

참으로 사랑하면 희생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사랑의 표현일 뿐이다.

 

참된 친구는 ‘참으로 사랑하는 관계’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란 렌즈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친구의 참된 사랑의 구성요소인 ‘희생’에 대해 살펴보자.

참된 사랑에는 대가 지불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희생이 필요한데,

희생은 조금 더 적극적인 요구이다.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 삼상 18:4

 

다윗과 요나단의 배경을 기억하는가? 다윗은 가문 없는 이새의 집안의 막내아들로 양치기 출신이다.

베들레헴은 그야말로 시골 촌구석이다. 반대로 요나단은 왕자다.

그런데 그 왕자가 어떻게 하는가? 자기 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입혀준다.

왕자에게 옷은 자기의 주권이자 왕권을 상징한다. 그런데 요나단이 자기 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입혀주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다윗을 채워주기 위해 사용한다.

 

사랑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비워 상대방을 채워준다. 우리는 어떤가?

서로를 향해서, 교회를 향해서 참된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었는가?

 

그런데 ‘희생’은 참 재미있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도 이 부분에서 많이 회개했던 적이 있다.

처음 중국으로 파송되어 선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했을 때 참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배낭 하나 메고서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옮겨다니며 선교지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해서 희생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이런 기도를 했던 것을 회개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을 희생으로 생각했던 것을 회개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는 희생이 희생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참으로 사랑하면 희생하게 되지만, 그때의 그 참된 희생은 희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결혼한 커플이 있다.

건반을 치는 자매와 기타를 치는 형제인데 자매가 빵을 정말 좋아하는 빵순이다.

그래서 형제가 다른 찬양팀 밴드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공연할 때, 가는 곳곳마다 유명한 빵집을 찾아가 빵을 산다.

그리고 빵이 아직 따뜻할 때 전해주기 위해 공연이 아무리 늦게 끝나도 꼭 자매에게 들러서 빵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순간적으로 내 안에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음성이 들렸다.

‘너 봤지?’

 

그 형제가 만약 이렇게 반응했으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제가 그 빵을 배달하기 위해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럼 나는 아마 “이 못난이”라고 하며 책망했을 것이다. 

그 형제는 자매에게 빵을 배달해주면서 그것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기쁨이었다.

 

참으로 사랑하면 희생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사랑의 표현일 뿐이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서 그것이 희생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사실은 그것을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참된 사랑 안에는 희생의식이 없다. 희생은 그저 사랑의 표현일 뿐이다.

‘빵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가져올게요.’

‘주님, 마음이 아프신가요? 제가 땅 끝까지 가겠습니다!’

그 희생을 치르는 본인은 그것이 희생인 줄 모른다.

이제 우리가 이런 희생을 치를 각오를 가지고, 말과 감정과 기분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기준으로 참된 사랑을 하는 참된 친구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 완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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