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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할 때 아빠를 불러라!! 최재식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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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할 때 아빠를 불러라!!

두려움이 임한 순간에 부르짖어라.

 

아무도 내게 노래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노래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성경과 교회론을 가르쳐달라는 사람들은 있다.

왜냐면 누군가의 눈에 내가 성경 전문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다(눅 11:1).

그들은 다른 어떤 것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예수님께 전도나 축귀逐鬼,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다.

다만 그들이 뭔가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했다는 기록은 기도에 대해서만 나온다.

앤드류 머레이, 《무릎학교》, 규장, 21쪽

 

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고, 그 모습은 기도의 전형이자 전문가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예수님의 우선순위는 기도였고(눅 5:15,16, 6:12,13), 바쁠 때일수록 더 기도하셨으며(막 1:35-37),

그분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계셨던 데다가(눅 22:39), 사역 때문에

기도할 시간이 없을 때는 억지로라도 기도의 시간과 장소를 만드셨다(마 14:22,23).

또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밤새워 기도하는 모습도 보여주셨다(마 4장, 막 14장).

예수님은 기도 전문가셨다.

 

내 믿음의 귀가 멀었을 때는 부르짖어야 한다. 더욱 외쳐야 한다.

예수님의 그런 모습은 사도들을 통해 초대교회에 말과 기도 행위로 전해졌고, 히브리서에도 기록되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히 5:7

심한 통곡과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성경에서 명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모습이기도 했다.

또한 초대교회가 따랐던 기도의 모습이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의 기도 모범도 따른다. 부르짖으며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예수님 같은 기도 전문가로 주변인들에게 보여지면 좋겠다.

늘 기도가 우선순위이며, 바쁠수록 더 기도하고, 기도의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고, 그것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내며, 중요한 일 직전에는 밤을 지새워 길게 기도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

한편, 부르짖는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 모범을 따르는 것인 동시에 예수님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그분이 안 계셨더라면 하나님과 우리는 원수 관계였을 뿐이다. 성경은 말한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롬 5:10)

 

예수님 덕분에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회복되었다(요 1:12).

그와 함께 하나님의 독생자가 자신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기도의 권한을 주셨다(요 16:23-27).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하며 기도할 수 있게 하셨다(마 6:9).

그래서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기도할 때 꼭 부르짖을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속삭여도, 생각으로 말해도 들으신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려도 응답하신다.

그러나 정작 내 귀가 문제다. 내가 안 들리는 것이 문제다. 내 믿음의 귀가 멀었을 때는 부르짖어야 한다.

더욱 외쳐야 한다. 간절히 소리를 높여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외쳐야 한다.

믿음이 잠들어버린 그 심령을 큰 소리로 깨워야 한다.

 

불신이 자리 잡은 마음을 그 소리로 흔들어야 한다. 두려움 때문에 믿음의 귀가 멀었을 때는 하나님이

아빠 되심을 그 심령 가운데 크게 선포해야 한다. 더욱 간절히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생각이 행동을 낳지만, 마비된 생각을 흔들어 깨우려면 때로는 행동이 앞서야 한다.

외침이 행동이다. 불신의 마음을 향한 신앙행동의 쇠몽둥이가 바로 부르짖음이다.

하나님이 내 아빠시라는 부르짖음이다.

나는 고아가 아니고 아빠 자식이며, 그분은 내 하늘 아버지, 창조주시라는 외침이다.

 

내게 하늘 아버지가 계신다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두려움을 뚫고 불신의 벽을 부숴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짖음을 통해 하나님과 원수 관계는 이미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아빠와 자녀 관계로 회복되어 새로워졌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불신의 순간, 두려움이 임한 순간에 부르짖어라. 아빠를 불러라.

 

하늘 아버지를 불러라. 부르짖으며 기도하라(롬 8:15). 이것은 기적이며 특권이니 확실히 누려라.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시 77:1)

 

- 무서워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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