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2월 남편과 나는 성남의 달동네에서 밀알교회를 개척했다.
교회가 조금씩 성장하자 시아버지가 다시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알코올중독자였던 시아버지는 하루에 적어도 소주 한 병을 드셔야 했는데,
주일만큼은 남편의 통사정으로 절제하셨다.
그러던 어느 주일에 시아버지가 일을 내셨다.
설교 도중에 만취해서 교회에 들어와서는 술주정을 하신 것이다.
“여러분! 끄~윽. 저것이 내 아들 종필이여! 야 이놈! 종필아! 끄윽!”
그나마 몇 안 되는 성도들이 시험에 들어
“당신 부모나 먼저 구원시키고 교회를 하든지 말든지!”하며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얼마 전에 20일 금식과 21일 금식을 마쳤지만 다시 40일 금식을 작정하고 기도원에 올라갔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딸을 등에 업고 남편을 대신해
주일예배,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성경공부, 주일학교예배와 심방까지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초인간적인 능력을 발휘한 때였다.
주일마다 칼국수를 큰 솥에 끓여 허기진 성도들의 배를 채우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죽을 것처럼 힘들었지만 성도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다시 힘을 얻곤 했다. 한번은 철물점을 하는 이미순 자매가 교회로 허겁지겁 뛰어왔다.
“전도사님! 빨리 좀 오세요! 큰일 났어요. 글쎄 아버님이 술을 드시고 우리 철물점 앞에서…”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이 자매의 다음 말은 안 들어도 뻔했다.
샬람이를 등에 업고 급히 따라나섰다. 뺨으로 눈물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철물점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구경이나 난 듯이 둘러서 있었다.
시아버지가 한겨울인데도 바지를 벗고… 차마 그 광경을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술에 취하면 힘이 세지는지 시아버지를 끌고 고작 800m 떨어진 교회까지 오는데 내 온몸에는 멍투성이었다.
시아버지가 몸부림칠 때마다 여기저기 나자빠졌던 것이다.
구경하고 선 사람들이 혀를 차는 소리가 어디서나 따라왔다.
“주여! 이 길은 골고다의 언덕입니다. 주여! 진정 어느 때까지입니까?”
주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딸아! 감사하라! 딸아! 이겨내라!”
당시 나는 46kg도 안 되는 봄으로 그 모진 시간을 견뎌 내느라 툭하면 쓰러졌다.
그때마다 샬람이는 내 등에 업혀서 “엄마! 죽지 마! 엄마 엉엉” 하며 울었다.
남편의 금식 31일째 되는 날 나는 안 가시겠다는 시아버지를 억지로 모시고 기도원까지 찾아갔다.
38kg까지 깡마른 당신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시아버지는 목이 메어 흐느끼셨다.
남편은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위해 한 해 동안 20일,21일,40일, 총81일을 금식한 것이다.
기도원에 다녀오신 그날 밤, 시아버지가 급히 나를 불렀다.
“아가야! 나 좀 살려 다오. 마귀가 나를 지옥으로 데려가려 한다” 황급히 달려가자
시아버지는 자해하듯이 양손으로 당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한쪽 구석에서 무서워 덜덜 떨고 계셨다.
나는 시아버지를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내 영안이 열리며 시아버지의 목에 쇠사슬을 감아서 끌고 가는 마귀가 보였다.
“나사렛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조상대대로 이어지는 이 술마귀야! 영원히 우리 집안에서 떠나가라!”
죽을힘을 다해 울부짖듯이 큰소리를 쳤다.
순간 시아버지가 “아악!” 소리를 지르더니 쓰러지셨다.
잠시 후, 시아버지는 일어나 물을 마시더니 “휴우, 이제 살았다” 하셨다.
그날 시아버지는 40년 이상을 괴롭히던 알코올중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얻었다.
지금은 저 천국에 계시지만, 마지막 가시는 그날까지 믿음 좋은 ‘집사님’으로 사셨다.
시아버지의 영혼 구원을 위해 81일을 금식했고 20년을 넘게 기도한 남편의 끈질긴 기도가 맺은 열매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