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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와 가장 친밀한가? 최재식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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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와 가장 친밀한가?

 

아빠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아빠는 어린 자녀가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주는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되는 단어다.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가 법적으로는 배우자인 남편과 아내지만, 실제로는 내 자녀들이다. 

아기들은 자기가 먹던 것을 엄마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발을 아빠 얼굴에 올려놓고 잠을 청하면서도

전혀 미안해 하지 않는다. 부부가 아무리 가까워도 남편 얼굴에 발을 올리지 않고, 맛이 없다고

먹던 것을 뱉어서 아내 입에 넣지도 않는다.

 

그런데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이것이 가능하다. 자녀에게 아빠,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친밀한 사이다.

이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직접 부르지 못했다. 그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되는 결정적 죄목이 신성 모독죄였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도나이”(주님)라고 불렀다.

그런 문화에서 하나님을 하나님도 아니고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뒤로 나자빠질 일이다. 

《행복의 조건》(프런티어, 2010)이라는 책에 보면 하버드대에서 행복에 대해 70년을 넘게 연구했는데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이 한 가지로 압축된다고 한다.

그것은 관계가 좋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복음은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를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로 회복시켜준다. 

 

우리는 언제 아빠와 가장 친밀함을 느낄까?
내가 완벽할 때가 아니라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드러났을 때다.

아빠 앞에서 자녀는 완벽해야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부족해도 괜찮다.
상사에게는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일을 못하고 사고를 치면 혼나고 버림받고 쫓겨난다.

 

그런데 아빠에게는 어떤 모습도 다 괜찮다.

오히려 우리의 부족함이 아빠와 더 친밀해지는 기회가 된다. 이것이 자녀의 특권이다. 

아무리 실수를 많이 하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아빠는 자녀를 버리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TV 리모컨이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네 살짜리 아들이 엄마가 청소하는 것을 돕겠다고 따라다니면서 리모컨을 쓰레기통에 버린 거였다.

이 어린 아들이 부모 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부모는 한 번도 아들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종은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할지 모르지만, 아들은 그런 게 전혀 상관없다. 이것이 아들이다. 

 

관계에서는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다. 아들 앞에서는 언제나 아빠가 약자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신 것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 나보다 약자가 되시겠다는 것이다. 자녀와 나, 둘 중 한 사람만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고민하는 아빠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일까 기도도 하지 않는다.

아빠는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자녀 먼저 살린다. 무조건 자녀를 살린다.

그것이 아빠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내가 죽어도 좋아. 너 없는 천국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어. 너는 내가 반드시 살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더 이상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버림받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능력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님께 완전히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더는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샤넬과 벤츠의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된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비교하며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복음적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고 힘차게 살아가자.

온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나의 아빠다. 나는 왕의 자녀다. 

 

<따라하는 가정예배>장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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