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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면무도회’를 마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최재식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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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면무도회’를 마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정직히 나의 내면을 말씀 앞에 비추어 ‘나’민족의 종교적 가면을 벗어버려야 한다.

 

어느 날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뜻밖의 주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너는 여기 왜 왔니?”

 

무슨 이런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 음성이 정말 주님의 음성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가장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당황스러웠고 분노마저 느껴졌다.

 

“아니, 몰라서 물으세요?”

“내가 너를 왜 이곳 이스라엘로 불렀는지 아느냐?”

나는 구구절절 내가 아는 범위에서 말씀을 드렸다.
“하나님, 저 유대인 선교사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부흥과 회개, 유대인의 변화를 위해서 온 선교사입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헌신한 그 많은 시간을 알고 계시면서 왜 이런 질문을 하십니까?”

그 말을 마치자, 주님은 상상하지도 못한 말씀으로 선교에 대한 나의 패러다임을 바꾸셨다.


그건 네가 정의한 선교이고, 나와 상관없다! 너는 유대인을 변화시키고 선교하려고 이곳 이스라엘로 왔지.

그런데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부터 먼저 선교하고 싶구나!”

할 말이 없었다. 하나님이 ‘나’ 먼저 선교하시기 위해 나를 이곳 이스라엘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그때 당시에는 잘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 선교의 대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복음이 전해지기 가장 어려운 민족이 어디인 줄 아느냐?”

타민족이 아니라, ‘나’ 민족이다!”


‘나’ 민족? 이건 또 무슨 말씀인가! 수많은 타민족, 미전도 지역이 있는데, ‘나’(?) 민족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지역적으로 가장 가깝고 익숙하지만 복음을 거부하고 적대적이며 하나님을 주(Lord)로 인정하지 않는 곳!

그곳이야말로 가장 복음이 전해지기 어려운 곳이 아니겠는가!

 

다름 아닌 ‘나 자신’(myself)인 것이다. 변화 받기 싫어하고, 복음에 대해 불순종하며, 내 마음대로

살아가고픈 ‘나’ 민족이야말로 가장 복음이 필요한 ‘미전도 지역’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결코 ‘선교 대상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님을 만났고 변화되었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엄격한 기준과 자기 성찰이 부족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 롬 3:9-18

 

“그러면 어떠하냐?”

사도 바울의 무거운 질책이 우리의 마음을 후벼판다. 선교사라고, 목회자라고, 사역자라고 우리는 나은가?

위에 언급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다. 가끔 내 안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내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하나님의 세 번째 질문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교를 함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인지 아느냐?”

선교에 장애물이 얼마나 많은가! 건강, 언어, 재정, 교회, 현지인들과의 관계, 자녀 문제, 자녀 교육 등

외적인 요인도 많고 내적인 요인과 갈등도 많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애물은 다름 아닌 ‘선교사 자신’이라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 간 선교지에서 정작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나 자신’, ‘나 민족’이라고 하신다!

복음을 전하기 전에, 현지인들을 변화시키기 전에, 선교지에 가서 선교사 노릇 하기 전에 복음은

 ‘나 자신’에게, 선교사와 목회자 자신에게 먼저 전해져야 한다.


구원은 예수다.
나는 진정. 예수님께 붙어있는가?
주는 포도나무. 나는 가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쓴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고 한다.

빌립보 교회는 복음으로 인한 바울의 매임과 변명함과 확정함에 처음부터 참여한 교회였다(빌 1:5,7).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반대로 여러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며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빌 3:18).

우리는 스스로 ‘십자가의 전달자’라고 생각하지 ‘십자가의 원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이 지난 사역에 대해 ‘사형 선고’의 판결을 하시기 전까지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유대인들’이 사역의 대상이라고 생각했고, 유대인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이스라엘 선교사로 부르셨다고 믿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유대인들을 바꾸기 위해 노방전도하고, 길거리에서 찬양하며 전단지를 배포하고,

히브리어를 공부하며 나름 선교사적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유대인들을 보며

내 안에 그들을 향한 사랑이 점점 식어갔고, 오히려 싫증과 미움이 자라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복음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나 자신’이며, 가장 복음에 대해 대적하고, 거부하고,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선교사 자신이라는 사실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타민족’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그동안 복음을 전하며 사역을 감당해 왔지만, 이제는

‘나’ 민족에 대해 성찰하고, 말씀 앞에 엎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아프지만, 자존심이 상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지만, 이제는 ‘가면무도회’를

마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정직히 나의 내면을 말씀 앞에 비추어, 도무지 깨어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진이 되어버린 ‘나’ 민족의 종교적 가면을 벗어버려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이론이 무너져야 한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대적하며 높아진 모든 견고한 진들은 무너져야 한다!

우리 안의 모든 생각은 그리스도께 무릎 꿇고 사로잡혀야 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은 이렇게 ‘자기의’(self-righteousness)가

허물어지고 그리스도로 인해 새로워진 사람을 통해 흘러가기 때문이다.

 

- 네가 나의 영광을 짓밟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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