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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불행해… 내일을 바꾸고 싶다면… 최재식 20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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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불행해… 내일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들처럼 살지 말자. 그것이 미래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사기의 결론이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이것이 정말 끝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이런 사사들의 악행을 이야기하면서도 맨 마지막에는 듣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좋은 이야기로 끝맺음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다릅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삿 21:25 새번역)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어설픈 문학가처럼 억지로라도 이런 시대 속에서 희망을 찾으라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가 회복될 것이라는 어떤 희망의 소식도 주지 않습니다.

 

기대 같아서는 이렇게 너희들이 잘못하더라도 하나님이 누군가를 보내주셔서 너희들을 회복시키겠고,

너희가 결국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사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사기에서 소개하는 사사들의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계속 어두워지고 내리막을 향해 달려가고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집니다. 결론적으로 사사기의 끝맺음은 최악 중의 최악입니다.

 

“정치 지도자, 군사 지도자, 경제력을 가지고 이스라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이들이 타락했어.

그런데 너희 신앙의 지도자라고 하는 레위인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야.

아니, 그 레위 사람들이라는 이들이 더해.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시작도 종교 지도자들이고,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종교 지도자들이 묵인한 세상의 부정함이 결국 이렇게 만든 거야. 그냥 너희들은 하나님 없는 백성,

왕이 없는 공동체일 뿐이지.”

 

사사기의 역사가는 이렇게 사사 시대의 역사를 고발하며 어떤 희망도, 어떤 회개도 요청하지 않고 이 책을 끝맺습니다.

 

그러면 누가 예부터 전해 내려오던 사사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역사책 형식으로 모았던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사사들의 시대를 신랄하게 비판했을까요?

모두가 온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사기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사사기라는 역사의 형식을 띄고 있는

예언서를,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형태로 묶은 이를 ‘신명기적인 신학을 가진 역사가’(Deuternomist)라고 부릅니다.

이 신명기적인 신학을 가진 역사가는 ‘예언자적인 전통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니콜슨, Nicholson)이 있고,

‘지혜 문학에 능통한 제사장 계열의 서기관 공동체의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바인펠트, Weinfeld)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위 제사장 계열의 사람들일 것’이라는 주장(폰 라드, Von Rad)도 있습니다.

 

통합적으로 본다면, 예언자적 신학을 가지고 부패한 사회를 꿰뚫어 보며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레위 제사장(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사기는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사기를 레위 제사장들의 자기반성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적인 신학을 가진 역사가가 사사기를 기록하던 시대를 대략 페르시아 시대 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고레스 칙령 이후 유다 땅으로 돌아온 이들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고, 새로운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는 신앙적인 기초를 닦으려 했던 시대라고 말합니다.

새롭게 세워야 할 성전과 나라는 과거와 같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했습니다.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과거를 되짚으며 이 비극을 레위인 제사장인 자신의 조상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지금의 나’가 이 비극의 원인 제공자이며, 하나님의 공동체를 허물고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과거이자 현재입니다.

이제 과거 선조들의 모습 속에서 지금의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내일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금의 나와 나의 공동체가 맞이할 운명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눈으로 ‘과거의 나’의 역사를 바라보고 ‘지금의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고쳐가면서

‘내일의 나’의 운명을 바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내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님을 받아들일 때, 변화는 시작됩니다.


나의 과거를 하나님의 눈으로 냉철하게 바라보고 나의 현재를 하나님의 눈으로 직시하면서 나의 미래를 하나님과 함께

계획하는 것이 사사기를 기록한 역사가인 레위 제사장들이 역사를 마주하는 시각이었습니다.

과거에 선조들이 걸었던 길의 결과로 그들이 맞이한 미래가 오늘입니다. 오늘이 불행하다면 그리고 내일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그들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래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 역사의 기록을 통해서 외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우리의 왕 되심을 잊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선조들이 걸었던

그 비극의 역사, 지금 경험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 그보다 더 깊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리라.”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곧 예언입니다.

 

- 내가 왕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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