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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최재식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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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교만은 ‘내가, 내가’를 외치는 자기 중심성이다.

 

교만은 드러난 교만이 있고 포장된 교만이 있는데, 드러나든 감추어지든 교만은 절대로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을 때 내 마음에 탁 꽂힌 명언 하나가 있었다.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다.”

 

사랑과 기침만 감출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교만도 감출 수 없다. 성경에서 증거를 몇 가지 찾아보자.

다니엘서 4장 29,30절을 보자. 여기에는 느부갓네살 왕의 대놓고 교만한 모습이 나온다.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 단 4:29,30

 

감추려는 기색조차 없다. 말하는 중에 “내가, 내가”란 표현을 반복하며 자신을 높인다. 

그런데 “내가, 내가”를 겸손으로 포장하여 자기 안의 교만을 교묘하게 감추었던 사람도 있다.

사울 왕이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 삼상 15:24,25

 

사울 왕의 “내가, 내가”는 느부갓네살 왕의 “내가, 내가”와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사울 왕의 ‘내가’는 회개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내가’이다. 굉장히 겸손해 보이는 ‘내가’이다.

 

그러나 기침과 사랑과 교만은 감출 수 없다고 했는데, 사울 왕의 숨겨진 교만이 어디에서 발각되는가?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 삼상 15:30

 

이쯤 되면 느부갓네살 왕 쪽이 오히려 순수한 것 같지 않은가?

결국, 사울 왕은 교만의 문제로 망하고 마는데, 이것이 왜 두려운 줄 아는가? 

나를 비롯하여 조금 배우고 교양 있다고 하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느부갓네살 과’가 아니라 ‘사울 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대놓고 시건방지고 거만한 사람은 오히려 안전하다. 회개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교양이 넘쳐서 겉보기엔 겸손한 것 같은 사람들이 사실은 위험하다.

주변에서 자꾸 “저 사람 겸손해, 겸손해”라고 칭찬하니 자기 자신도 속기 때문이다.

 

성경은 진정한 겸손과 교만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가? 마태복음 4장에 보면, 마귀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을

세 가지 내용으로 유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진정한 겸손과 교만에 대해 발견하게 된다.

나는 마귀가 던진 3가지 유혹의 핵심이 이 말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 마 4:9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기도 하지만, 교만의 아비이자 교만의 원조이기도 하다. 무엇이 교만인가?

느부갓네살 왕의 “내가, 내가, 내가”나 사울 왕의 “나를 높이사”나 여기 마귀의 요구인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에서

극명하게 보이듯 자기 중심성’이다.

저 사람 참 겸손해”라는 칭찬 한마디에도 그 내면에서 ‘내가, 내가’가 요동치는 자기 중심성 말이다.


망하기 전에 교만이 온다. 계속된 회개가 죄를 이기게한다 – 찰스스펄전

 

그렇기 때문에 교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다 해당하는 문제이다.

교만은 사람을 피해 가지 않는다. 아무리 겸손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본문에서 교만과 관련하여 꼭 얻어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우리가 교만과 관련하여 기억해야 할 메시지는, 기록된 말씀’으로 교만을 물리치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본문의 내용은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과 그 교만으로 인해 그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고초에

대한 내용인데,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기록해두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보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느부갓네살 왕의 인생을 조명하고자 함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것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기록된 말씀으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 스스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마귀의 세 가지 유혹을 예수님은 무엇으로 물리치셨는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4

 

예수님이 첫 번째 유혹을 물리치시는 장면이다. 두 번째 유혹은 어떻게 물리치셨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마 4:7

 

세 번째 유혹도 똑같은 방식으로 물리치셨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 마 4:10

 

예수님은 마귀의 공격을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교만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탄이 교만으로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할 때, 우리의 인격과 의지로는 물리칠 수 없다.

 “물러가라”고 아무리 외친들 순순히 물러갈 사탄이 아니다. 우리 안에 말씀이 많이 심겨져 있어서 이 공격에는 이 말씀으로

응수하고, 저 공격에는 저 말씀으로 응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 심긴 말씀이 사탄의 공격을, 특별히 교만으로 이끌려는 사탄의 공격을 이길 능력이 될 줄 믿는다.


- 세상에서 믿는 자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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