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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흥수변호사
1957년 충남 예산 출생. 1979 서울대 법대 졸업. 1979 사시 21회 합격. 1981 사법연수원 11기 수석졸업. 1984 해군 법무관 제대, 서울 남부지법 판사. 1992 미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2004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현 법무법인 민우 대표 변호사
- 신앙수기-
나는 원래 불교를 믿었다. 고향집은 백제시대 의자왕 때 세워진 향천사라는 절에서 3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학창 시절을 거쳐 서울 법대 3학년 때까지 난 스스로 불교 신자라고 생각했다. 교회를 다녀야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 가르침은 불교보다 수준이 낮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성경을 읽으면서 엄청난 진리를 깨달았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치며 십자가의 도를 깨닫게 됐고, 그 이후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다 불교에 귀의한 현각 스님이란 분이 있다. 그 분이 1999년 책을 통해 자신의 구도 과정을 밝힌 바 있다. 나는 불교를 믿다 기독교를 믿게 된 사람으로서 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향천사에서 하버드까지'라는 제목으로 나의 삶과 신앙을 소개할까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아침 저녁으로 절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와 목탁소리를 들으며 컸다. 나는 왕이 될 왕자가 백성들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불쌍히 여겨서 왕이 되길 포기하고 설산에 들어가 수행하면서 불교가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의 가르침도 당연한 진리로 생각됐다.
나의 아버지도 역시 불교 신자였다. 당시 사람들이 불교를 믿는 이유는 불교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밖에 절에 가서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했더니 소원이 성취됐다는 얘기도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를 믿게 하는 이유가 됐던 것 같다. 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아프면 아버지는 우리를 엎고 불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향천사의 범종소리와 목탁소리, 그리고 아버지의 독경소리에서 자랐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가난한 산골, 아홉 남매 중 일곱 번째 아이었다. 내가 태어난 때는 6·25가 끝나고 얼마되지 않은 때이다.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던가? 우리 집은 농토는 얼마 안되고 식구는 많기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은 명절 때를 제외하고 늘 배가 고프게 지냈던 것 같다. 특히 보릿고개라고 해서 5∼6월 쌀이 떨어지고 보리를 수확하기 전에는 정말 배가 고프게 지냈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장차 미국 유학은 말할 것도 없고 하버드대에서 공부할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같이 서울 법대에 합격하였고 또 법관이 되었으며 법원에서 하버드대 연수생으로 선발돼 하버드대에서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고 어떠한 깨우침을 허락하셨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2) 복음 믿기 전부터 하나님이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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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주는 사연과 사람들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주는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3, 4학년 두 해 동안 담임을 맡으셨던 손부일 선생님이 나에겐 아주 특별한 분이셨다.
그때 나는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다. 게다가 초등학생답지 않게 늘 검고 낡은 교복을 입고 다녔다. 지금 아이들은 안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의 얼굴엔 마른버짐이 피어 있었는데, 나도 그랬다.
비가 오던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전학 온 학생과 싸웠다. 그 아이가 나를 "농사꾼의 자식"이라고 놀렸기 때문이다. 코피가 나고, 옷단추가 뜯겨나가도록 싸웠다. 선생님은 싸운 이유를 물으셨다. 그 친구는 나더러 농사꾼의 자식이라고 말한 것은 싹 빼놓고 싸움의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 아이의 얘기를 묵묵히 다 듣고 난 뒤 선생님은 나에게도 물으셨다. "왜 싸웠니?" 나는 대답했다. "얘가 저더러 농사꾼의 자식이라고 했어요." 나는 우리가 싸운 이유는 모두 그 아이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선생님이 당연히 그 아이를 나무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말을 듣는 순간 선생님은 조용히 탁자를 내려다보며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견디기 힘들 만큼 긴 시간이었다. 몇 분이 지난 뒤, 선생님은 심호흡을 하시더니 나에게 말씀하셨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도 농사꾼의 자식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잘못을 깨닫았다. 그리고 내가 농사꾼의 자식이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훗날 내가 법관이 돼 소년범들 재판을 할 때 한 소년에게 학교를 그만둔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 아이는 부자 아이와 똑같이 장난을 했는데 선생님이 부자 아이는 혼내지 않고 자신만 혼내기에 화가 나서 그만뒀다고 답했다. 그 선생님에 비하면 내가 만난 손부일 선생님은 얼마나 좋은 분이신가?복음을 믿기 전의 나의 삶을 돌아보면 그 삶도 역시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비록 교회에 다니지 않고 성경을 읽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으로 인도하고 계셨다.
구약 성서의 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지켜야 할 명령이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켜서 세상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셨다. 반면 신약성서의 복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길이다. 구약성서를 지켜서 세상 축복을 누린다면, 신약의 복음을 믿고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세상 축복을 땅에서 지렁이가 누리는 정도의 행복이라고 비유한다면, 천국의 영광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의 자유와 기쁨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덧없는 세상 축복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이다. 나는 복음을 믿기 전의 삶은 구약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믿은 후로는 천국의 영광을 위해 세상축복을 분토처럼 여기고 한 알의 밀알처럼 희생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초등학교 때 나는 대부분 우리 집 근처 향천사로 소풍을 갔다. 그때 부잣집 어머니들이 맛난 음식을 준비해서 부잣집 아이들에게만 나눠주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자라서 내 자식만을 위해서는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내와 결혼한 뒤 1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아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았으니 우리에게도 필요하면 하나님이 언제든지 자녀를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자녀만을 위하여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가 늦게 태어나는 바람에 나는 보다 신앙생활에 전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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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갑작스런 형 사망에 인생 허무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때가 오리라는 꿈을 잃지 않았다. 부모님도 어려운 살림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셨지만 공부 잘하는 자녀들에게 소망을 품고 계셨다. 아버지는 학교를 다니다 학비를 못 내 정학을 맞더라도 상급학교에 합격한 자녀들은 어떻게든 입학시켰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집이 가난해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그때 겪은 서러움 때문이었는지 자식들 교육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당신은 굶더라도 자식에게는 밥 한 술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작은 문전옥답이나마 열심히 농사를 지으셨다.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의 인고를 떠올릴 때마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어머니는 올해 88세이신데도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오신다.
나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예산중학교를 거쳐 예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예산고는 나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지급했다. 중학교 때도 1학년 담임 장순각 선생님의 배려로 도에서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녔고,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대 법과대학원도 장학생으로 다녔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나는 은혜를 크게 입은 만큼 사회와 하나님께 빚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와 가장 친했던 바로 위의 형이 갑자기 세상을 떴다. 서울대 진학에 실패한 뒤 시름시름 앓다 병원에 입원한 지 1주일 만이었다. 추운 2월 어느날 새벽, 숙모가 찾아왔다. 숙모는 어머니께 형이 많이 아프니 서울로 가자고 말했다. 어머니는 서울엔 아버지가 계시고, 집에는 아이들만 둘 수 없다며 난감해하셨다. 숙모는 실은 형이 죽었다고 실토했다. 윗방에 누워 어머니와 숙모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내 가슴은 무너지는 듯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주님, 주님, 주님'이란 글자를 수없이 써내려갔다. 나는 불교를 믿었지만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기독교의 주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은 살아나지 못했고 화장터의 한 줌 재로 변해 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나는 형의 죽음을 겪으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철저히 느꼈다. 어제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살아서 나와 함께 뛰놀며 뒹굴던 존재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무(無)'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어느 날 갑자기 무로 돌아가버린다면 우리의 삶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돌이켜보면 불교에 깊이 빠져 있던 내가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데에는 형의 죽음이 가져온 깊은 상처를 극복하는 길이 기독교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기독교야말로 죽음과 영원의 문제에 대해 확실한 답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현재 한남대 영문과 교수로 계시는 홍기영 선생님이셨다. 하루는 선생님이 시편 23편을 영어로 외워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영어 명시 중의 명시라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뜻도 모르면서 열심히 외웠다. 그때는 4당5락이란 말이 유행이었고, 나 역시 4시간씩 자며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3시까지 공부하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꾸만 공부한 내용이 떠오르며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빨리 자야 내일 또 일어나서 공부할 텐데 잠이 오지 않자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문득 얼마 전 영어로 외운 시편 23편이 떠올랐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채 두 번을 외우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그 후 나에겐 시편 23편을 외운 뒤 잠을 자는 습관이 생겼다. 대학 시험 때까지 1000번도 넘게 외웠던 것 같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서울대는 말할 것도 없고 연·고대 합격자도 없는 3류 학교였다. 그런 학교에서 내가 서울대 법대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시편 23편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시 불교 신자여서 그 깊은 의미를 알 수 없었는데도, 묵상할 때마다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나중에 시편 23편을 하루 세번 이상 묵상한 사람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간증을 들었다. 시편 23편은 기적의 말씀이다.
(4) 좋은 사람 되기위해 성경 읽어

불교를 더 좋아하고 불교신자였던 내가 시편 23편을 수천 번 묵상하며 고교시절을 보낸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까? 그러지 못했다. 시편 23편 덕분에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었음은 나중에 신앙이 깊어진 뒤에야 알 수 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머리가 좋아서 됐다고 생각하며 기고만장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고시 준비를 하던 대학 4학년때 비후성비염이라는 콧병이 생겨 수술을 하고 한 달 정도 쉬게 됐다. 그때 인생의 목표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시 공부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인생의 목표가 좋은 사람이 돼 좋은 일을 하며 좋은 삶을 사는 것이어야 하는데 육법전서를 달달 외운다고 좋은 사람이 될까라는 회의가 든 것이다. 그때 불현듯 좋은 사람이 되려면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의 좋은 내용을 내것으로 받아들여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삶을 살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제일 좋은 책은 사서삼경, 불경, 성경 등 경전이었다. 대학 1학년때 교양 차원에서 사서삼경을 읽었는데 고리타분한 얘기라 생각됐다. 신약은 마태복음부터 읽었는데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걷고, 말 한마디로 병자를 고친 얘기들이 황당무계하게 느껴져 결국 마태복음도 제대로 다 읽지 못했다.
그런데 좋은 책을 읽어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니 정확히 이해는 안 되지만 엄청난 진리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1주일간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느꼈고, 성경공부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나는 다시 고시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졸업을 앞두고 가장 바쁜 때였다. 그때 캠퍼스 게시판에서 한사랑선교회가 1주일에 한 번씩 요한복음 공부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참여하기로 했다. 첫 수업때 1장 1절에서 사도 요한은 '말씀(진리)이 곧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있었는데 나에겐 충격적인 가르침이었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옥황상제나 염라대왕 같은 분으로 믿고 있는 줄로 알았었다.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한 이유는 동서양 신화에 나오는 신은 모두 인간이 지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달랐다. 나는 진리 자체인 하나님이 이 우주에 왜 안 계시겠느냐고 생각했고,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다. 혼자 성경을 읽을 때 한 시간에 열 가지를 깨달았다면, 성경공부시간에는 백 가지, 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에게는 소그룹 성경공부가 요긴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처음 성경을 접한 분들은 구약보다 신약을 먼저 통독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정독하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때문에 믿음의 길로 들어가기보다 오히려 의문이 더 커질 수 있다.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그대로 뛰어넘고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염두에 두면서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최대한 빨리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구약을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나는 고등학교때 처음 구약을 창세기부터 읽은 적이 있는데 유대 민족의 창조설화처럼 느껴져 10장까지만 읽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12장부터 아브라함과 야곱, 요셉 등 믿음의 조상들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시작되는데 그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 안타깝다. 창세기, 출애굽기를 읽고, 넘어가서 사무엘 상하를 읽은 뒤 또 뛰어넘어서 시편이나 잠언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잠언을 처음 읽었을 때, 구체적으로 삶에 도움이 되는 지혜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지금도 시편 23편을 묵상하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새 힘이 생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 믿음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말씀과 상관없는 성도는 성도가 아니다.
(5) 소송 때문 찾아온 의뢰인에 먼저 복음 전하는게 내 원칙

나는 대학 4학년 때 좋은 책을 읽어야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좋은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나는 지금도 성경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관련 책도 틈틈이 보려 한다. 다른 종교에 대해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진리가 담겨 있는 양서를 영혼의 양식으로 매일 읽어야 제대로 살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안 되면 사고를 치고 분쟁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형사재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사람들에게 꼭 불교든 기독교든 종교를 갖고 좋은 책을 읽으며 살 것을 당부했다.
재판하는 법관 앞에서는 수백번 용서를 빌지만 견물생심이라고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욕심을 품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양심이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범죄인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양심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책을 읽으며 살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재판할 때 보면 스스로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상대방에게 양보하라며 화해를 권하면 잘 듣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다. 양보를 못하는 분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 중 기억하는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한다. 간혹 법원에서 나와 함께 일한 사람이 내가 재판할 때 성경을 가르쳤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법관으로서 한 번도 공적으로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차별해 취급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화해나 조정을 할 때에는 법적 측면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도덕, 종교 등 모든 문제를 종합해 인격적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므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기독교에 대한 말을 나눌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변호사 일을 하면서 좋은 것은 기독교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전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문제에 휩싸여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먼저 복음 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종교가 없다는 사람들과 맨 먼저 나누는 말은 스스로 잘 나서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바다에 배가 떠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의 힘인가, 물의 힘인가? 우리 인생의 배가 세상의 바다를 항해할 때도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떠받쳐주고 있다. 또 사람이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 희생으로 성인이 되어 살면서도 부모를 부인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나는 스스로 태어나 스스로 자랐고 나에게는 부모가 없다고 한다면 큰 망발이 아닌가?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생겨나 스스로의 공으로 잘 살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부모를 부인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 그러므로 모든 부모의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뜻은 무엇인지를 교회에 나가 배워야 하며 그분 뜻 안에서 살아야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다음 내가 믿음에 대해 쓴 책 '날마다 함박 웃음'과 기독교를 소개하는 책을 선물로 나눠준다.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와 닮은 점이 있어서, 의사의 치료를 믿고 잘 따라야 환자의 병이 잘 낫듯 내 권면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재판 결과가 좋은 경우가 많다.
골로새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하셨고 주님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안에 살 때 비로소 참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된다'고 하셨다. 그런데 변호사일을 하며 만난 성도들 중에 너무나 말씀이 없는 것을 보게 된다. 주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가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사는 성도들을 대할 때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교회 모임이나 교육이 설교자의 원맨쇼가 아니라 성도들 마음 속에 말씀을 새겨주는 것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난 것은 영이라고 하셨다. 우리의 구원이란 육적인 존재에서 영적인 존재로 새롭게 창조돼 신령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의 자녀가 되고 신의 가족이 되어서 신의 성품을 품고 신의 나라에 살게 되는 것이 구원이다.
사람이 신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주인이 되는 일이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세상적인 차원, 육적인 차원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내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육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을 살게 되었는가를 간증함에 있어서 오직 하나님 홀로 영광을 받으심이 마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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