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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 주목! 최재식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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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 주목!
 

지금 내가 의지하고 있는 분은 누구인가?

 

나는 사역자의 한 사람으로서 사역자는 흔히 우리가 이해하는 목자shepherd라기보다 ‘sheepdog’ 즉

양치기 개라고 믿고 있다. 물론 목양의 관점에서 목자로서 역할이 있다.

 

하지만 그 역할 역시 양들이 직접 바라보고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할 목자라기보다는, 양치기 개로서 양들이

어찌하든지 목자이신 예수님을 주목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반응하여 그분을 좇아가도록 돕는 중간자라는 것이다.

사역자는 양들과 동행하며 때로는 큰소리로 무섭게 짖기도 하고, 때로는 상냥하게 울며 격려와 위로도 보내고, 꼬리도 흔든다.

어떻게 해서든 양들이 목자 되신 주님을 바라보도록,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주님께 반응하도록 주님을 돕는 자이며

목자와 양들을 연결하는 자들이다.

 

양치기 개는 누구보다 먼저 목자의 사인sign을 정확히 받기 위해 자신이 먼저 목자 되신 주님께 집중하고

경청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아울러 양들을 보아야 한다.

양들이 잘 따라가고 있는지, 잘 반응하고 있는지, 그래서 양치기 개는 쉴 새 없이 고개를 빨리 움직여야 한다.

목자를 봤다가 양들도 봤다가 어떻게든 이 둘 사이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 목자이신 주님을 만나고, 기도 가운데 주님을 만나도록 돕는 프로그램, 커리큘럼, 조직이

되면 좋겠지만, 어쩌면 지금은 그것들이 오히려 주님과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표적인 케이스가 고린도교회다. 고린도교회는 그토록 탁월한 바울이 가장 오래 머물러서 가르쳤는데도 가장 문제가 많았다.

그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었나? 바로 분쟁이었다.

교회 성도들이 사람을 중심으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파로 각각 나뉘어졌기 때문이다.

 

왜 이런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진정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리더들을 주목한 나머지,

성도들이 주님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즉 리더들이 자신들을 통해 결국 주님 앞에 성도들 스스로가 설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실패한 것이다.

 

교회에 파벌과 분쟁이 있다는 것은 목자 되신 예수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때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세워주신 목회자나 리더들을 신뢰하고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핵심은 그게 아니다. 요지는 몸을 이루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주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좇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주목하도록

물론 성도들은 사역자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배우게 된다.

사역자는 성도 스스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좇아가도록 성도들을

정신 무장시켜야 한다. 이 일을 위해 끊임없이 주님을 주목하도록,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그분의 음성에

반응하도록 성도들을 훈련해야 한다.

 

툭하면 목사에게, 용하다는 전도사, 권사에게 달려가 안수기도를 받고 위로나 얻으려는 병든 그리스도인들,

그래서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세상 한복판에서 말씀과 기도로

 무장된 가치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유대인 속담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제자훈련과 교회의 훈련이 안타깝게도 잘 손질되고 요리된 고기를 젓가락만 들어 올리면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서비스 신앙’에 젖어들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앙은 교회 안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교회만 벗어나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한 번도 스스로 주님으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받아보지 못하고 그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 경험이 없으니까.

 

“이 시대 청년들은 힘이 없어. 아이들 안에 강단이 없어.”

흔히 이렇게 말씀하는 어르신들이 보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꼭 그렇다.

성숙함이란 스스로 자신의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통해 증명된 결론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고 그렇게 살아낼 수 있도록 성경적 가치로 정신을 무장시키는 훈련이 그 본질이다.

성도를 온전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무장시켜 스스로 세상에서 성경적 가치와 예수 정신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세우는 것이 진정한 본질이다.

 

- 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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