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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을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최재식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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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을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을 좋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다윗은 주의 얼굴 앞에서 지내는 자였다.


이것이 그의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었다.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 삼상 16:10-12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울을 버리셨을까?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지 않으셨다면 이런 작전은 필요 없었을 텐데. 하나님이 찾으시는 새 왕은 사울과는

다른 모습이어야 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그 이유가 새 왕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이유는 그의 인생에서 끊임없이 누적되어 왔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사무엘상 15장에 나오는 한 사건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소유 하나 남기지 말고 그 백성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그 명령을 어긴다.

아말렉 왕인 아각을 죽이지 않고 생포한 데 이어 자기가 보기에 쓸 만한 것은 보전하는 죄를 범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 삼상 15:9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기준에 따라 행동했던 것이다.

사울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호소하며 변명한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 삼상 15:24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결정적 이유였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합한 자였던 것이다.

사울은 더 이상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이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가기 위해 만사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가 버림받은 원인이다.

 

그런데 이것도 부족해서 사울은 사무엘에게 이런 비참한 애원을 하기에 이른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 삼상 15:30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 제가 잘못했으니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라고 읍소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서 내 체면 좀 세워주세요. 꼭 좀 살려주세요”라고 한 것이다.

그만큼 사울은 그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

 

결정적인 순간, 우리는 자기 명예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좇을 것인가?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돌아가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사도 바울은 자문한다.

내가 사람을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하나님의 사람에게 사실 다른 기준이 없다. 내가 사람을 좋게 하느냐, 하나님을 좋게 하느냐이다.

사람을 좋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다윗 역시 연약한 존재였다. 때로는 넘어지고 실수했다.

눈에 보이는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고, 자기 대신 싸워줄 용사가 몇 명인지 궁금하여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백성을 계수하는 일을 감행하기도 했고, 자기 열정에 취해 웃사에게 언약궤를 옮기도록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주를 경외함을 우리에게 부으소서!

 

하나님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신 부분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a man after my own heart’라고 되어 있다.

직역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추적하는 자’이다. 주님의 마음, 주님의 시선, 주님의 생각을 좇으며

주님의 기준에 합격되고자 더 예민하게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다.


다윗은 정말 그랬다. 그는 원수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봤다. 골리앗을 보지 않고, 그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봤다.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보지 않고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봤다.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지은 후에도 죄의 대가를 보지 않고 그 배후에 계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봤다.

그리고 자신을 주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버렸다.

이로써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되고 기념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자 하는 중심, 그 중심에 뿌리를 내려 맺히는 열매를 보신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종은 그의 시선이 하나님 한 분께만 머무는 사람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 완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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