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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 최재식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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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

경고를 주실 때, 하나님께 돌이키고 교만을 꺾어야 한다.

 

나는 구약의 인물 요셉이 참 부럽다.


요셉은 그 인생의 출발이 고난으로 점철된 비참하고 초라한 시작이었지만

그 마지막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멋지고 아름다웠다는 것은, 총리대신이라는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섰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니다.

요셉의 아름다움은 용서할 수 없는 자기 형제를 용서하는 너그러움에서 나타난다.

어린 시절 자기 인생을 망쳐버린 형제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자손들까지 축복하며 거두어주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또 임종 직전에 “이제 나는 죽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뜻과 경륜을 살펴서 꿈을 이루어야 한다”는

요지의 유언을 전하고 가는 모습도 부럽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인생의 끝이 아름답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성경에도 처음에는 잘나가다가 그 끝이 비참해진 케이스가 얼마나 많은가?

사울 왕을 비롯하여 구약의 많은 왕이 비참한 모습으로 인생을 마무리짓는다.

따라서 우리는 다 지금부터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이 야곱처럼 처음보다 갈수록 더 좋아지는 인생,

요셉처럼 처음에는 고난이 많지만 마무리가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니엘서 5장 1-9절에 나오는 벨사살 왕은 정말 비참한 왕이다.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단 5:1)

 

다니엘서 5장은 귀족 천 명을 초청하여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단 5:30)

 

그렇다면 벨사살 왕은 어떻게 하다가 이런 비참한 인생이 되었는가?

그가 가진 치명적인 잘못이 무엇인가? 나는 그 답이 다니엘서 5장 안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이 귀족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배설하는데, 잔치 자리에서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다.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단 5:5)

 

이런 놀라운 일을 경험한 벨사살 왕은 주술가와 점성가를 불러 그 글자의 뜻을 알아내라고 명한다.

하지만 그 글자를 깨달아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다니엘을 불러서 해석을 요청하는데,

그 해석을 말하기 전에 다니엘은 선대왕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을 언급한다.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살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단 5:20,21)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 다음과 같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단 5:22,23)

 

여기서 벨사살이 어쩌다가 그렇게 비참한 인생이 되었는지 그 이유가 나온다.

화려한 인생을 살았던 벨사살은 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가?

이것을 다 알고도….”

 

즉, 교만해지면 선대왕 느부갓네살처럼 비참한 인생이 된다는 것을 보고 듣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똑같이 교만한 길로 간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욕하고 비난하라고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겪게 하시고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시는 것이 아니다.

선대왕 느부갓네살이 교만하다가 징계를 받은 것을 알았다면 타산지석으로 삼아 하나님 앞에 겸손한 길로

나아가야 하는데, 벨사살 왕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비참한 인생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살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서 5장 22절에 보면 벨사살이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단 5:22)

 

그런데 사실 벨사살은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이 아니다. 그런데 왜 아들이라고 기록했을까?

이에 대해서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데, 나는 송병현 교수님의 주석에서 공감 가는 설명을 읽었다.

유대인들은 ‘아들’이라는 단어로 직업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내용을 다룬 마태복음 21장을 보자.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마 21:8,9)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부분을 원어 그대로 직역하면 “다윗의 아들이여”이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도 ‘Son of David’로 표현되어 있다. 예수님이 다윗 왕의 아들인가? 아니다.

그런데 왜 다윗의 아들이라고 하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다윗의 아들이여”라는 표현에는 다윗의 계열,

곧 그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계보를 강조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벨사살을 ‘느부갓네살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데는 벨사살이라는 인물의 색깔이 담겨 있는 것이다.

즉 교만하여 끔직한 고난을 당한 느부갓네살의 계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의 아들인가? 바벨론의 아들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이 경고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면 현상 유지가 아니라 더 악해지고 더 나빠지는

자리에 빠지고 만다. 느부갓네살 왕이 저지른 짓을 보라.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단 1:2)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성물을 탈취하여 자기들이 믿는 이방신 창고에 처박아두었다.

그런데 벨사살은 한술 더 뜬다.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단 5:2-4)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성물을 빼앗아 창고에 처박아두는 악행을 저질렀다면, 벨사살은 한술 더 떠서

그 성물을 술잔으로 사용하며 하나님을 조롱했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태도가 훨씬 악해지지 않았는가?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교만의 자리에 빠졌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깨달아 돌아섰지만, 벨사살은 끝내

돌이키지 않고 망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교만한 자리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를 깨닫지 못하면 그 자리에 머

물러 있을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더 나빠지고, 더 악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부갓네살과 벨사살의 잘못된 모습을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로 받고 내 삶에 적용하여 교만을 꺾지

않으면 우리는 더 포악해지고 만다. 예수 오래 믿은 사람이 신앙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교만해지고 악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믿음은 유지라는 것이 없다.

후퇴하거나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 (전 12:13)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누군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징계를 받는가? 그것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기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경고로 받으라. 주변의 어떤 분이 정직하지 못하여 곤경에 처했는가?

그것은 그 사람을 욕하라고 보게 하신 것이 아니다. 그 메시지를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경고로 받는 것이

일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태도이다. 그런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앞으로

무엇을 더 조심해야 하는지 가르쳐달라고 구하라.

 

다윗처럼 겸손히 기도하기
주님 제 마음을 살피시고, 무슨 악한 것이 있는지 깨닫게 하소서

 

이런 자세가 왜 필요한가? 본문 5장에 보면, 벨사살이 손가락들이 쓴 글자를 보고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서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려고 애를 쓰는데, 전부 쓸데없는 짓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내려진 후에는

그 해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것으로 이미 끝 아닌가? 다니엘의 해석을 보라.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단 5:25-28)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가 나타나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해석이나 분석이 필요 없다. 그러니 벽에 글자가 나타나기 전에, 하나님이 주변의 느부갓네살의 모습을

통해 경고를 주실 때, 하나님께 돌이키고 교만을 꺾어야 한다.

아직 기회 있을 때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 제발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


- 세상에서 믿는 자로 산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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