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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중요한 것이 있다. 최재식 2018-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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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중요한 것이 있다. 

오직 그분만 찾는 사랑을 기다리신다.

 

진실한 사랑은 자기가 사랑하는 이를 열렬히 찾는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다. 예수님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예수님은 우리를 열렬히 찾으신다.

그러면서 결국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가기를 기다리신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찾는 사랑, 오직 예수님만 찾는 사랑을 기다리신다.

우리의 사랑을 제외한 그 무엇도 예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지 못한다.

 

열정적으로 일에 전념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맡은 일을 끈기 있게 감당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악을 미워하고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태도도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런 태도가

언제나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만으로는 예수님을 만족하게 해드릴 수 없다.

 

예수님은 더 원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개인적 차원에서 진심으로 예수님에게 마음을 드리기 원하신다.

그러나 딱 한 번,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처음 체험할 때만 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예

수님은 우리가 수시로, 매일 아침 새롭게 예수님에게 우리의 마음을 드리기 원하신다.

 

그가 나를 먼저 사랑하셨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에베소교회에 주신 주님의 메시지를 요한계시록 2장에서 읽었을 때 나의 삶에

도전을 준 진리이다. 요한계시록 2장이 말하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는

일반화된 개념과 같지 않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관련해서 아주 흐릿한 개념만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우리 마음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다투는 많은 사랑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에베소교회에 주신 말씀에서 예수님이 의미하신 바는 매우 명백하다.

예수님은 다른 어떤 대상을 향한 사랑도 따라오지 못하는 독보적인 사랑, 진짜로

‘첫째가는 사랑’(first love)을 의미하신 것이다.

 

이 주제를 놓고 기도하는 동안에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나는 이 주제와 관련해서 오직 한 가지 종류의 사랑, 즉 신랑을 향한 신부의 사랑만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신랑을 향한 신부의 사랑을 정확히 떠올릴 때 ‘처음 사랑’이

지닌 ‘첫째가는’의 의미를 살려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랑을 향한 신부의 사랑을 마음으로

그려보면 예수님이 ‘처음 사랑’이라는 말로 의미하고자 하신 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신부의 ‘첫째가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슬픔이 나의 마음속으로 기어들었다.

그 사랑이 보이는 뚜렷한 한 가지 특징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 사랑은 오직 신랑에게만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었다.

신부의 모든 생각은 오직 신랑으로 가득하다. 신부의 모든 순간은 오직 신랑으로 가득하다.

신부의 마음은 오로지 신랑만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관찰했을 때 그런 그리움, 그런 절대성(absoluteness)은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신랑을 향한 신부의 사랑은 오직 하나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

신랑을 향한 신부의 사랑은 도를 넘는 사랑, 아끼지 않는 사랑, 앞뒤를 재지 않는 사랑이다.

그렇기에 그 사랑은 어리석은 행동도 한다. 신랑을 향한 신부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이다.

그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모든 것, 즉 신랑을 향한 신부의 사랑을

특징짓는 이 요소들을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에서 찾아내려 했다면 허탕을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검(劍)이 나의 마음을 점점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하나님의 영을 통해 내가 어떤 것 하나,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정말로 잃어버렸다는 점을 깨우쳐주셨다. 그것은 나의 ‘처음 사랑’, 예수님을 향한 친밀하고 개인적인 사랑이었다.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신앙의 규율과 질서를 잘 잡았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고, 따라서

모든 것을 잘 정돈해놓았다고 결론짓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많은 그리스도인과 마찬가지로, 주님을 향해

처음 품었던 사랑을 점차 잃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바람직한 결혼 생활에서처럼 그 사랑이 서서히 사라져 더 현실적이고, 더 도리에 맞고, 더 실제적이고,

더 분별력 있는 성숙한 사랑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고, 나는 그런 착각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의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이 떨어져나갔다.

정확히 말해서,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도리에 맞는 실제적인 사랑에 이르지 못했다.

나의 죄, 즉 내가 예수님의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 하나님 말씀의 빛 아래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른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위에 놓는 사랑,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랑,

존재 전체와 가진 것 모두를 예수님에게 쏟는 사랑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정말로 도리에 맞게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처음 사랑’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한다. 도를 넘는 그 사랑, 어리석은 그 사랑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도리에 맞게,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만이 ‘첫째 되는 계명’(First Commandment,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계명, 마 22:37,38 참고)에 순종하기 때문이다.


- 주님을 사랑하는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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