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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미련하게 살지 말자! 최재식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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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미련하게 살지 말자!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 때 탈출할 수 있다.

 

지혜는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잠 1:22)라고 책망한다.


 여기에는 “미련한 자들아, 언제까지 미련한 자로 남아 있기를 원하느냐?”라는 뜻이 들어 있다.

 

나는 ‘형제에게 …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마 5:22)는 무거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으며, 나 자신의 미련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큰 사랑의 마음을 품고 말하는 것이며, ‘온전히 뛰어난 지혜’의 친구로서 말하고 있다.

성경은 ‘미련한 자’(fool)와 ‘미련함’(foolishness), ‘미련한 행위’(folly)에 대해 아주 많이 말하는데,

이 세 단어는 모두 동일한 어간에서 나왔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단 한 가지 경우는 다윗이다. 

다윗은 극도의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지만, 거기에서도 큰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고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친 척했다.

아기스는 그의 신하에게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삼상 21:14)라고 말했다. 다윗은 미친 척함으로 위험에서 벗어났다.

아마도 그는 궁정에서 미친 척해서 빠져나온 최초의 사람일 것이다.

 

성경은 능력이나 지능이 평균 이하로 너무 떨어지는 사람들이나 너무 심약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지만 미련한 자들에 대해서는 많이 말한다.

아주 머리 좋은 자, 천재에 가까운 자, 심지어 천재인 자도 미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적으로 우수하고 놀라울 정도로 아이큐가 높은 사람도 도덕적으로는 미련할 수 있다!

성경에 의하면, 도덕적으로 미련한 자는 마음에 기름이 잔뜩 낀 자이며 둔한 자이다.

정신적으로 둔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둔한 것이다.


이것을 잘 지적한 곳이 이사야서 6장 9-10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사 6:9,10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진리를 가지고 장난을 친 백성에게 떨어진 주권적인 하나님의 사법적 판단이다.

그들은 미련한 자들이 되었다. 그들의 마음에는 기름이 끼었다. 그들의 귀는 막혔다. 그들의 눈은 감겼다.

영적인 것들을 깨달을 수 없었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열국의 추악하고 무서운 도덕적 악화 과정을

묘사하면서 사람들의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말한다(롬 1:21).

 

성경이 말하는 ‘미련한 자’는 아이큐가 낮은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성경은 정신적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 예를 들면 저능 상태에 있거나 비정상적 정신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아주 친절하게 말할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미련함은 도덕적 미련함이다.

 ‘온전히 뛰어난 지혜’의 목소리가 시장에서, 정치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길거리에서

울려 퍼진다. 도처에서 지혜의 음성이 소리치는 것은 특히 미련한 자에게 말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련한 자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구약의 지혜의 책들은 미련함을 보여주는 경우들을 무수히 언급한다.

잠언 12장 15절은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라고 말하는데,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는 것이

미련한 자의 특징 중 하나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달으면 온유하고 겸손해지지만, 미련한 자는 그런 것을 모른다.

미련한 자는 자기가 도덕적으로 옳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잠언 14장 16절도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련한 자를 가리켜 ‘사나운 기질을 가진 외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는다. 도덕적으로 미련한 자는 언제나 자기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최대한 온유하고 친절하게 당신의 작은 간증을 그에게 들려준다 해도

그는 계속 완고할 것이다. 그는 확신에 차 있다. 즉, 자기의 행위가 바른 줄로 여긴다.


내가 볼 때, 이런 경우를 보여주는 좋은 예는 구약에 나오는 욥의 아내이다.

욥이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재 가운데 앉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을 때 그의 아내는 그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라고 말했다. 그러나 욥은 아내에게 “당신은 미련한 자처럼 말한다.

미련한 여자들, 즉 믿음 없는 여자들 중 하나처럼 말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아내가 미쳤다고 말하지 않았고, 다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말한다.

믿음 있는 자처럼 말하지 않고 미련한 자처럼 말한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태도, 그리고 삶을 향한 그녀의 세속적이고 무감각하고 빗나간 태도는 그녀가 미련한 여자임을

보여주었고, 이것을 간파한 욥은 즉시 그녀가 미련하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욥의 아내에 대한 언급은 그 후 성경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미련한 자의 잘못된 확신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신약에서 발견되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끝부분에 나온다.

여기서 그분은 지혜로운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지만 미련한 자는 모래 위에 짓는다고 말씀하셨다(마 7:24-26).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많은 빗물이 도랑을 이루며 흘러내려올 때 가장 먼저 무너진다.

 

미련한 자는 다른 모든 부분에서는 영리할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선견지명이 없었다.

자기의 미래를 예상할 수 없었고, 자기 행동의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런 사람은 미련해서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

물론 이런 집은 언제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교훈은 도덕적 선견지명의 문제에 적용될 수 있다. 미련한 자는 내세의 삶이 없는 것처럼 산다.

오직 이 세상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산다. 만일 당신이 그런 사람에게 “다음 세상이 있다고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물론이죠. 나는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습니다. 매주 교회에 갑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당신은 다시 살 것이라고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물론입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진리를 따라 살았느냐 이다.

내 말의 요점은 이 사람이 이런 것들을 믿는다 해도 그 믿음과 상관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진리를 진리가 아닌 것처럼 여기는 사람은 진리를 부정하는 사람만큼 나쁘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진리를 앵무새처럼 입으로 반복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라서 살았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지혜는 지식으로 얻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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