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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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원한다.” 최재식 20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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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원한다.”

나는 마치 큰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지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은혜로운 집회가 한참 진행되는 가운데 한 강사님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을 강하게 도전하셨다.

그때 나는 속 편히 ‘그래. 헌신해라. 헌신해야지!’ 그러고 있는데 주님이 “너도!”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약간의 당혹감과 함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뜸 이렇게 말했다.

“했잖아요. 다 했잖아요. 백만장자 되는 것도 포기하고 헌신해서 그나마 남아 있던 것까지 다 가져가셔서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책하고 옷 빼고는. 지금 겨우 친구 방에 얹혀살고 있잖아요.”

쉽게 말해서 “제가 얼마나 헌신했는지 다 아시면서 뭘 더 헌신하라고 하시는 거예요?”라고 한 셈이다.

그런데 주님의 음성이 매우 단호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나는 너에게 있는 무엇을 요구한 게 아니다. 너의 손에 있는 뭘 달라는 것도 아니다. 나는 너를 원한다.”

나는 마치 큰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지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주님은 내게 있는 무엇을 받기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일전에 주님을 나의 구주와 주인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올인’을 했다면, 이제는 그분의 부르심 앞에

내가 가진 무언가를 드리는 헌신이 아닌 나 자신을 ‘올인’ 하는 헌신의 시간이었다.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주님은 마치 우리가 뭘 좀 가지고 있는 꼴을 못 보시고, 강요하듯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분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주님은 우리의 주인이기를 원하신다.

이전에 내가 주인 되어 내가 원하는 삶을 살던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회개하라!”

 

회개의 원뜻은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가 아니다. 회개의 의미는 “돌아서다”이다.

내가 주인 된 삶에서 돌아서서 이제는 주님이 주인 된 삶을 사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명령하실 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시간이며, 매 순간 우리가 그것을 잊지 않고

흔들리지 않도록 확인시키시는 시간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요청을 하시기 이전에 주님 자신이 먼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이다. 따라서 주님은 나에게 나의 모든 것 그리고 나 자신을 요청하실 수

있는 주인이심을 믿는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위해(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그분과 원수 되어 있을 때에)

자신을 내어주셨고 우리를 먼저 사랑으로 섬겨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를 네 삶의 주인으로 초청해주지 않을래?”

예수님을 삶의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을 가리켜 우리는 “거듭나다” 또는 “구원받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시라는 것은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주신 구세주라는 의미이며,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것은 말 그대로 내 삶을 소유하신 소유주라는 뜻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다” 또는 “거듭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소유주가 바뀐다. 더 이상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시다.

 

이제 우리는 목자 되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만을 좇아 사는 그분의 양이 된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목자 되시는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목자이시므로

그분이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선한 목자가 되신 주님이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인격적으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데, 우리가 못 들은 척하거나 또는 “싫어요”라고 하면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한 영적 계약을

스스로 파기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오락가락한다. 그래도 그분은 선하시고 신실하시다.

그래서 계약 파기 대신 그분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아주 가끔은 따뜻하게(?) 터치해주신다.

이 터치는 우리에게 계약을 상기시킨다. 누가 나의 주인이신지를 기억하도록 한다.

주님의 ‘따뜻한 터치’를 원하는가?

 

- 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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