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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독을 디톡스 하라! 최재식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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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독을 디톡스 하라!

그분은 우리를 사랑받는 자녀로서 쓰시기를 원하신다.

 

‘모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다가 갈라지는 그곳에 우뚝 선 한 사람,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홍해가 갈라지는 순간은 상상만 해도 짜릿하고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모세 또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 이집트 왕궁을 나온 이후, 40여 년 동안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던 모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찾아온 때는 그가 80세가 되던 해 어느 날이었다.

 

모세는 평소처럼 양들을 이끌고 가다가 불꽃이 계속 타오르는 떨기나무를 발견한다.

전에 없던 이상한 현상을 보면서 그는 혼잣말을 내뱉는다.

“내가 돌이켜 가서 보리라(I will turn aside and see).”

그가 떨기나무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곳에서 부드럽고 장엄하며 경외감마저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거룩한 음성이었다.

“모세야, 모세야. 네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라.”

 

이때부터 모세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으로 바뀌게 된다. 하나님은 그에게 사명을 감당하도록 다그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먼저 모세의 독을 제거하는 ‘디톡스’ 과정을 밟으셨다.

 

출애굽기 3, 4장에서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를 보면, 모세가 어떤 독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반응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모세 안에 들어있는 다섯 가지 독에 대해 분석해 보자.

모세의 대답1) 내가 무엇이라고?  (출애굽기 3:11)
모세의 대답 2) 나를 보낸 자가 누구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출애굽기 3:13)
모세의 대답 3) 사람들은 절대 나를 따르지 않을 겁니다. (출애굽기 4:1)
모세의 대답 4) 게다가 나는 어눌하기 짝이 없어요. (출애굽기 4:10)
모세의 대답5) 아무튼 저는 아니에요. 다른 사람을 보내세요. (출애굽기 4:13)

 

모세는 왕자의 신분으로 40년, 양치기의 신분으로 40년을 보냈는데 이 80년 인생은 어떠했을까?

그의 삶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그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모세의 마음에 쌓여진 독’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독’이란 영혼육을 모두 포함하여 사람의 건강, 성장, 인격, 그리고 능력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부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내적 상처라고도 말하겠지만 나는 상처라는 말보다 ‘독’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이제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모세가 가지고 있던 독들을 하나하나 찾아보자.

첫 번째 답변에는 이러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내 꼬락서니를 내가 잘 압니다. 나는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어요.”

두 번째 답변에 숨어 있는 모세의 독을 찾아보자.

“그래, 내가 간다고 칩시다. 사람들이 날 보낸 자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을 텐데, 난 당신에 대해

아는 바도 별로 없어요. 솔직히 당신은 나와 함께한다고 말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나님에 대한 신뢰 부족이 모세가 가지고 있었던 두 번째 독이다.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모세는 이방민족인 미디안 족속 제사장의 사위였다.

즉, 장인이 우상 숭배하는 모습을 늘 가까이에서 보며 그에게 빌붙어 살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미디안 민족은 바알이라는 우상 신을 숭배했다.

 

당시 가나안 민족들은 바알을 비롯하여, 아세라, 아스다롯 등등의 우상들을 호칭하는 이름이 있었다.

모세가 젋은 시절을 보냈던 애굽은 또 어떠한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강함과 풍요를 상징하는 금송아지 하피스를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우상의 문화 속에서 살아본 이력이 있기에, 모세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하나님께

이름에 대한 질문을 했으리라.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우리가 구약에서 ‘여호와’ 혹은 ‘야훼’라고 부르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여호와란 불변하심과 영원하심의 의미를 갖는 ‘스스로 있는 자’란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3장 14절부터

22절까지 긴 답변을 통해 모세가 자신을 신뢰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설명하시고 설득하시며 예언하셨다.

 

세 번째 답변을 따져 보자.

“하나님이 너에게 나타나셨다고? 우하하하! 지나가는 개도 웃겠다. 넌 도망친 자가 아니냐?

그런데 네 말을 우리가 들어야 된다고? 깝죽대지 마라.”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할 게 뻔하지 않을까, 그는 두려웠다. 모세는 과거의 왕따 경험에서 온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애굽 왕실에서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에게까지 배척을 당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의 이러한 멘탈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출애굽기4장 2절에서부터 9절까지 두 번의 부인할 수 없는 이적을 행하시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셨다.

 

“지팡이도 내가 쓰는데, 하물며 내가 너를 쓰지 않겠니?”

이러한 의미를 모세에게 전달하기 위해 하나님은 지팡이를 통해 이적을 보이셨고, 모세의 손에 나병이 생기게 하셨다가

고쳐주시는 놀라운 경험도 하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세에게 확신을 심어주시며 그를 격려하셨다.

용기와 사명감을 불어넣기 위해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모세의 입에서 적어도 이런 말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행하시니, 저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해 주세요.’라고 말이다.

그런데 모세는 여전히 정말 짜증나도록 답답한 말을 내뱉는다.

 

그것이 바로 네 번째 변명이다.

“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말을 잘 못해요. 지도자가 되려면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만능인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난 안 되겠어요.”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순간이었으리라.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런 아이들이 태반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친구가 잘하는 부분만 보며 ‘나는 왜 저런 재능이 없을까’하고 열등감에

빠지는 아이들, 그들은 생각 자체가 부정적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 같은 생각을 긍정으로 바꾸기 위해 다시 말씀하시지만 모세는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쏘아붙인다.

‘에이, 모르겠어요. 아무튼 난 아니니까 다른 사람을 보내시란 말이에요.’

 

실로 복장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꾹 참고 인내하시던 하나님은 결국 화를 내셨는데, 영어 성경에서는 ‘The anger of the Lord

was burned against Moses.’라고 표현한다.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화가 불이 될 정도가 되었을까.

내가 하나님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에잇, 값어치 없는 놈 같으니.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못 알아 들어?

관둬라, 관둬. 너 없으면 어디 사람이 없는 줄 아나? 못난 놈 같으니!”

 

그러나 하나님은 한발 양보하신다.

 “알았다, 이 녀석아. 네 형 아론이 말을 잘하는 것 알지? 내가 네 입은 물론이고 아론의 입과도 함께하마.”

모세에게 쌓여 있던 마지막 독은 ‘혼자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은 여러 열등감에 쌓여 있었던 모세에게

동역자 아론을 붙여 주시면서 용기를 불어넣으셨다.

모세에게는 80년을 살아오면서 쌓인 독이 있었다. 하나님은 먼저 그의 영적인 독과 마음의 독을 디톡스하기 시작하셨다.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시며, 사명감을 심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열등감과 두려움에서 오는

책임과 회피 등을 용기로 바꾸신 것이다.

 

좀 더 행복하게, 좀 더 멋있게, 좀 더 가치 있게 살기를 원하는가? 해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마음의 독을 디톡스해야 한다.  

모세를 디톡스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인내심을 갖고 해독 과정을 밟아 나가시길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깨서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쓰임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 자녀를 빛나게 하는 디톡스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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