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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다 안다.” 최재식 201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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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다 안다.”

우리의 고통에 함께하시는 하나님...

 

권연경 교수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설명하며 ‘예수와 함께 걷는 구원의 길’이란 표현을 쓴다.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그러면서 가슴 뭉클한 예화를 하나 든다.

권연경 교수님이 군에서 겪은 일이라고 한다. 군대 다녀온 사람은 다 공감하겠지만, 훈련병 시절 제일 공포스러운

 것이 가스실이다. 방독마스크를 벗고 가스실에 있자면 눈물, 콧물 쏟아지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대열에 서서 먼저 훈련받는 훈련병들이 눈물, 콧물 쏟으며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런데 한 훈련병이 가스실에 들어갔다가 그 고통이 너무 극심해서 참지 못하고 문 입구에 버티고 있던 조교

다섯 명을 다 밀쳐내고 가스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주 큰일 날 일이다.

공포에 질려 바깥에서 웅크리고 있는데 중대장이 그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모두들 이제 큰일이 나겠구나 싶어서 주목하는데, 중대장이 공포에 떨고 있는 낙오병 어깨에 손을 얹고는 한참을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놀랍게도 중대장 자신도 방독면을 쓰지 않은 채 낙오병의 손을 이끌고 가스실로 함께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분의 표현으로, 중대장은 그 친구의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삼았고, 그 친구는 중대장의 승리를

자기 승리로 삼았다고 했다.

 

너무나 의미 있는 표현이다. 나는 이 표현을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체해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의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삼으셨다. 우리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우리의 승리로 삼았다.”

바로 이것이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하시며 함께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중대장이 그 친구 대신 가스실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친구의 손을 붙잡고 방독면을 벗고 함께 들어가는 행위, 이것이 복음이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이다.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예수’와 더불어 경험되어야 할 하나님의 성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면서 이 말씀을 주셨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 10:16

이 말씀 중에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하는 부분이 내 마음을 찡하게 했다.

다 큰 아들을 군대 보내는 아픔을 경험한 어머니들은 알 것이다.

부대 입구에서 아들을 혼자 들여보낼 때 눈물 흘리며 “건강해라, 밥 잘 챙겨먹어라, 잘하리라 믿는다”며 당부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이 말씀 속 예수님의 마음이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실패하고 깨지고 사기 당하고 악한 일을 겪을 때마다 우리 주님은 이런 탄식을 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구나.”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으로 이런 대안을 주신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17-20

 

바울을 비롯한 수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고 매 맞고 상상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할 때마다,

그들 마음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마다 주님의 이 말씀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에게 보내는 것 같다. 

너희들이 깨질 때,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할 때 절대로 내가 너희들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겠다.

그때 너희들에게 성령을 보내줄 것이다. 성령을 사모해라.” 이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는가? 

목회를 하다 보면, 가끔씩 교회 들어서는 입구부터 공기조차 무거울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다 내려놓고 싶은 중압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주님의 이 말씀이 내게 힘이 된다.

‘네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다 안다. 내가 네 연약함도 다 알지만 오늘날 이 교회를 네게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내가 너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겠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성령을 내가 너에게 보내주겠다.’

 

가장들은 또 얼마나 수고가 많은가? 내가 가장이 되어 보니 교회를 이끄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나 서너 명 되는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에너지나 그 무게는 똑같다.

가정을 돌보고 자녀를 이끄는 어머니들의 부담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네가 한 가정을 책임지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냐. 꼭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구나.
그러나 너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아.’

이런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론에 파묻혀버리기 쉽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 에클레시아 : 부르심을 받는 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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