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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내일을 잡고 있는가? | 최재식 | 2017-0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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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일을 잡고 있는가?내일 일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34) 교회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에게 옛날의 관성을 발견하곤 한다. 심지어 대예배 시간에 이 성경구절을 읽을 때도 제대로 보지 않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라고 읽는다.
' 내일'이 무엇을 잡고 있는지 모르지만, 누가 '내일'을 잡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 개역개정 이전의 번역판인 개역판에는 그렇게 번역되어 있었으니, 오래전에 머리에 박혀있는 대로 읽게 되는 것이다. 조사가 하나 있고 없고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엄청난 역할을 미치게 되는 성경말씀이다. “내일 일은 내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걱정할 것이 있지만 내일 것까지 끌어당겨서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염려하는 주체가 내가 되는 것이 문제이다. 왜? 예수님은 그러한 의미로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에서 주어는 ‘나’ 혹은 ’너’가 아니라 바로 ‘내일’이다. 즉 내일에 대한 염려는 내일이 스스로 알아서 해준다는 것이다. 영어 번역을 보자. “Tomorrow will worry about tomorrow itself.” 예수님이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말씀하셨는데도, 우리는 말씀과 현실을 분리시켜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내일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내가 스탠퍼드대학교에 있을 때 한 미국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I don’t know what tomorrow holds, but I surely know who holds tomorrow.” ‘내일’이 무엇을 잡고 있는지 모르지만, 누가 ‘내일’을 잡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그의 말이 내 마음에 불을 당겼다. 그때 마침 나는 인생의 30대를 온전히 떼어 놓아 주님께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채, 고민이 사라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 친구의 말이 나에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내일은 불확실하고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생존만을 생각하다 보면 기세가 꺽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나 보다. 내일 일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고 말이다. 내일은 알아서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로 하여금 생존의 두려움에서 뛰쳐나와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과 돌파의 멘탈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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