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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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 최재식 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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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

- 이효준 장로 (덕천교회, 객원기자)

무덤이 없는 세상은 정말 좋은 세상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옴과 동시에,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박해하던 사람들 때문에 잠시 무덤에 머물렀지만, 곧 부활하시어 
인간들이 가기 싫어하며 들어가기 싫어하는 무덤을 빈 무덤으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당연히 무덤에 계실 줄 알고 향유를 가지고 찾아갔던 여자들은, 
주님께서 예전에 일러 주셨던 "삼일 만에 부활한다"는 엄청난 사건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통상적으로 행하는 예식에 따라 무덤을 찾아갔지만, 무덤에는 이미 돌이 
굴러져 있었고, 주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영광을 잊고, 인간들의 
최대의 절망적인 무덤만 고집하며,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으려고 했습니다.

특히 무덤에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온유, 화평, 자비, 양선, 인내, 충성, 절제가 없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미움과 질투, 시기와 
분노, 무관심, 불안, 근심 등으로, 살아도 산 사람의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라고 질문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는 부활이요, 영생을 주시는 참 생명이시기 때문에 믿는 자는 
비록 육체적인 죽음을 겪는다 할지라도 살아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을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 곧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영원히 끊어지는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육체적인 죽음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삶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과,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하나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복락의 
삶을 살게 될 것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 다른 뜻은 내가 지금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무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성령의 인도로 
그 무덤에서 나와 새로운 삶, 부활의 삶을 살게 할 가능성, 그 힘을 네가 믿을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죽음 이후 미래 삶에 대한 믿음과 소망은 우리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삶을 두고 무덤에 살고 있음은, 이미 죽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힘으로, 다시 새롭게 살아갈 믿음이 없다면 부활의 삶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덤은 분명 '빈 무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나사로의 무덤도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무덤 안에서 살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진실을 일상생활에서 확실히 믿고 널리 전파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의 역사가 없었더라면, 고난의 무덤 속에서 지금까지 
처절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부활은 곧 우리의 생명이요, 길이며 은총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부활의 확고한 사랑을 품고 나누며, 복음의 확실한 증거를 세상을 향해 뿌려야 할 것입니다. 
빈 무덤에서 허우적거리는 신앙인이 아니라, 무덤을 확 열고 승천하는 신앙인들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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