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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평전"에서(2012년 6월 06일) 박현욱 201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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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에 대해서 기존의 시각과 다른 시각을 우리에게 제시하기 위해서 저자가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품으로 보인다
. 그러나 우리의 시각이 달라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완용의 죽음은 조선 언론에서는 심한 조롱거리였다. 그가 죽은 이틀 후, 동아일보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라는 논설을 실었다.

 

그도 갔다. 그도 필경 붙들려갔다. 겹겹이 있는 순사의 파수와 돈과 폐물 벽의 견고한 보호막도 저승사자의 들이닥침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드러난 칼과 보이지 않는 몽둥이가 우박같이 쏟아져도 이내 꼼짝하지 아니하였거든(……) 그런 것이나마 천사만사 누릴 줄 알았지만, 이제 와서 모두 다 허사임을 깨닫고 굳어가는 혀를 깨물 그때가 왔다. (……) 누가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능히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냐? 살아서 누린 것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이제부터 받을 일, 이것이 진실로 기막히지 아니하랴. (……) 양탈하더니 책벌을 이제부터 영원히 받아야지.

-296쪽에서

 

우리도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저 하늘의 삶을 위하여 붙들려 갈 것이다. 이 땅에서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인생이 되질 않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일당기사에서는 이완용의 인생을 간략한 연보로 정리하고 있다. 생후 10개월에 걸었고, 13개월에 말을 했으며. 6살에천자문을 몇 개월 만에 떼고 동몽선습을 배웠다. 그리고 고종이 등극한 1864년 그의 나이 7살에 효경을 수학했다. 사람들은 효경의 도리를 깨달은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완용은 어려서부터 총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이호석이 곤히 자는 이완용을 깨워 글을 외우게 시키면 그는 바로 암송했다고 할 정도로 총명했던 것 같다.

-24쪽에서

 

이완용은 이때부터 일당(一堂)이란 호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서체가 수려하여 추사 김정희에 버금간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이때의 교육에 힘입은 바 크다. -26쪽에서

 

이완용은 그 당시에 미국에서 2년 반 정도 외교관으로 생활을 한다. 이토 히로부미와 영어로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그 시대에 이완용은 많은 재능을 가지고 여러 문물을 경험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그가 왜 매국노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많은 이들이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필사의 노력한다. 그런데 바른사람이 되지 않으면 그 뛰어남이 오히려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을 이완용 평전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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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운영자 2012.6.7 09:16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뛰어난 사람이기 보다는 바른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무엇이 되기 보다는 어떻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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